웃긴 이야기이지만,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는 한국입니다. 오죽하면 한 때 한국 관련 문서를 영어판에서 번역해 들여올지에 대해서 토론이 열리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그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결국 정리가 안 되어 있으니 손 대기 싫고, 손을 대지 않으니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문서 방치의 악순환이 계속해서 굴러 간 결과가 현재의 한국어 위키백과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모두 이것은 문제라고 고개를 끄덕이시겠지만, 그 중에서 자기가 직접 나서서 정리하겠다고 손을 드실 수 있으신 분이 얼마나 계실까요. 거기에, 많아도 너무 많아서 한두명이 달려들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결국 사람들을 ‘직접 자료를 찾아서, 한국 관련 문서를 보강하는 것’에 밀어넣을 계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위키마을 프로젝트는 이러한 계기를 마련하고자 만들어졌습니다. 일본의 위키피디아 타운에서 출발점을 얻었지만, 지역 주민이 중심이 되는 그쪽과 달리 한국에서는 편집자들이 지역을 찾아가는 형태를 택했습니다.
결국 편집하는 사람이 애정과 관심을 가져주어야 하니, 아예 그 현장으로 가자고 하면 더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흩어져 있어 봐도 모르겠는 온라인 자료와 씨름할 바에, 지역이 직접 가진 자료를 통째로 받으면 더 쉽지 않을까. 편집하는 사람만 편집하는 위키백과에, 지역 주민이라는 새로운 기여자가 생기지 않을까. 공간적인 거리를 줄이면 심리적인 거리도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으로 기획한 행사였습니다.
위키마을 강경 이야기는 크게 행사 편과 조직 편으로 나누었습니다. 이번 글인 조직 편에서는 주최하는 입장에서 위키마을 행사를 조직하는 과정을 소개하여, 직접 행사를 만들어보고 싶으신 분들이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전 조사: 온갖 사례 참고

위키마을 프로젝트의 직접적인 모티브는 일본의 위키피디아 타운입니다. 처음에는 그 지역에 사는 편집자들이 자기 지역에 관한 문서를 보충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지역 주민들을 초청하는 아웃리치 행사로까지 성장하였습니다. 현재는 기존처럼 편집자가 주최하는 경우, 도서관 등 지자체에서 주최하는 경우, 특별한 테마를 가지고 열리는 경우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여 있으며, 일본 내 위키미디어 운동을 대표하는 이벤트로 자리잡았습니다.
한국에서의 위키미디어 행사는 편집자 중심에 협력을 끼워넣는 형태가 많지만, 위키피디아 타운은 무게중심이 편집자보다는 지역 주민 쪽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특별한 입력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지역 주민에게 위키백과를 소개하는 기회로도 작용한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아이디어는 좋지만, 실질적으로 모든 활동이 한국협회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한국의 실정을 고려할 때, 일본처럼 자발적인 주최를 고려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아직은.
한국에서도 지방과의 협력을 통한 문서 보충을 시도했던 경험이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일본이 주민에서 출발했다면, 한국의 시도는 언제나 기관에서 출발했습니다. 서산시·충청남도·평창군·대구광역시 등 한국협회와 지자체가 손을 잡은 적이 있었는데, 정작 행사가 끝난 뒤에도 참가자가 편집을 이어가게 만들지는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협회 안에서 나왔습니다.
문제는 동기였습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행사가 열렸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성과이지만, 위키백과가 원하는 것은 행사가 끝난 뒤에 남는 문서입니다. 이 어긋남을 좁히지 못한 채로 진행했으니, 참가자에게 “내가 왜 이 문서를 보강해야 하는가”라는 동기가 생길 리가 없었습니다. 위키마을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이기도 합니다.
사전 논의 및 조율
위키마을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오간 것은 5월 말 한국협회 전략회의였습니다. 안 그래도 위키탐방이 사진만 찍고 끝나는 하나의 지나가는 행사가 되어 버려 “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문서 보강으로 연결지을 수 있을까”라는 주제가 나왔을 때 해결 방안의 하나로서 위키피디아 타운의 도입이 제안되었고, 만약 진짜로 한다면 어디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논의가 밤새 이어졌습니다. 그 때 제안된 것이 강경, 더 정확히 말하면 강경역사문화연구원이었습니다. 강경으로 하는 구체적인 이점으로는,
- 지역에 대한 역사의식이 있고, 그것을 알리고 싶어함. 즉, 행사 개최 그 자체만이 목적이 아님.
- 명백히 수도권은 아니면서 수도권에서 그리 멀지 않아, 명분도 챙기며 수도권에서 참가하기 쉬움.
아마 강경이 어느 곳인지 모르시는 분이 많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랬으니 뭐… 간단히 설명하면, 예전부터 강경은 서해에서 들어오는 해산물과 내륙의 농산물이 집결하는 포구로, 한 때 조선 2대 포구·3대 장시라고 불릴 정도로 성장했고 그 덕분에 지금도 개항기에 세워진 근대식 건물이 많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철도가 만들어지며 포구의 역할이 사라지니 점차 작아져 지금은 작은 시골 마을이 되어 버렸지만, 풍성했던 과거의 역사와 문화는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곳입니다.
7월 초에는 직접 강경으로 찾아가 제안을 했습니다. 일단 소개를 위해서 간단한 PPT 파일을 만들었는데, 그 자리에서 전부 이해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나중에 천천히 읽어보세요” 느낌으로 인쇄해서 들고간 다음 놔 두고 왔습니다. 아예 PPT에 더해서 보고서 같은 느낌으로 자료를 하나 만들고 싶었지만 그렇게 길게 쓸 만한 내용이 없었다는 슬픈 뒷이야기.
이후 7월과 8월에 걸쳐서 연락을 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했던 점은 저 쪽에서 까먹지 않게끔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것이었는데, 저는 우선 말할 내용을 이메일로 보낸 다음 보내자마자 전화를 걸어서 똑같은 말을 다시 했습니다. 일종의 팁인데, 시골일수록 문자로 전화 되냐고 물어보는 것보다 그냥 다짜고짜 전화를 거는 게 더 잘 먹힙니다. 이메일은 그냥 나중에 전화 내용이 뭐였더라~ 할 때 다시 읽어볼 수 있게끔 하는 용도일 뿐.
동시에 행사 문서를 만들고 참가자를 모집했습니다. 여러 번 해 본 행사들과 다르게 이번에는 ‘위키마을’이 무엇인지도 설명해주어야 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너무 길게 설명해도 어차피 다들 안 읽으니까 짧게 유지하면서 핵심은 다 들어가게끔 하는 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ㅠㅠ).
참가자 모집을 하는데 의외였던 것은, 딱히 위키백과 바깥에는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 위키백과 바깥의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고 신청한 경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청 양식으로 지원했던 12명 중 5명 가량이 위키백과에 계정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위키백과에 편집은 안 하지만 읽는 사람이 상당수 있다는 뜻이니,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느낌으로 행사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시작 전부터 보았습니다. 다만 이번 행사의 특성 상 현지 주민도 아니고 위키백과 편집도 모르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렸고, 기존 편집자 중에서도 신청이 많았던 탓에 아쉽게도 전부 부르지는 못했습니다.
행사 사전 준비
당연한 말이지만, 무턱대고 가는 것보다는 좀 공부한 다음 가는 게 보이는 것도 많고 귀에 들어오는 것도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래는 8월 중순 경 미리 문서를 좀 보강하는 사전 모임을 가지고자 생각했으나, 한국협회 내 여러 사정으로 도저히 사람을 부를 시간이 나지 않아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했었더라면 참가자들의 관심도도 한층 높았을 테지만, 과연 몇 명이나 왔을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긴 하고요. 오히려 사전 모임이 부담이 되어서 신청을 안 했으려나…?
대신해서 행사 일주일 전부터 사전 문서 편집을 장려했습니다. 그렇다고 말로만 할 수는 없으니 저부터 솔선수범하여 강경읍 문서의 역사 문단을 꼬박 이틀에 걸쳐 전부 다시 쓴 다음, 반드시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강경포 및 강경장 문서까지 만들었습니다. 이후 참가자들에게 “한 번 읽어보고 와라, 거기에 한두 문장 정도 덧붙일 수 있다면 더 좋다”고 홍보했습니다. 일단 실제로 한 명이 오기 전에 편집을 했으니 성공이기는 했지만, 한 명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는 아쉬움도 동시에 있었습니다.
현장 행사 준비
솔직히 전야제는 흐름에 따라 급하게 만들어진 일정이었습니다. 행사 일정을 정해서 공개한 다음 몇 시간 후 강경야행 개최 일정이 발표되었는데 예정 일정과 겹치자, 어차피 지역을 보고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목적인 만큼 희망자는 숙박을 제공해 주자는 취지로 조직되었습니다. 공짜로 재워주는 것이니 신청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몇 없었습니다 (6명 가량의 신청을 예상했지만 결국 저를 포함해 3인 숙박).
행사 전 날 미리 강경에 도착하여 행사장을 확인했습니다. 사실은 딱히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부터 들어가서 쓰셔도 됩니다~” 해서 바로 확인 차 들어가 봤습니다. 사전 답사 때 확인한 곳이 아닌 다른 건물이어서 상태가 어떨지 살짝 불안했는데, 너무 잘 준비되어 있어서 역으로 당황했습니다. 특히 편집 행사를 할 생각이면 멀티탭과 와이파이가 반드시 있어야 하니까 몇 번 강조했었는데, 오히려 남을 만큼 있어서 좋았고요.

위층에 포토존도 있고 뒷마당도 있어서 잘 써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게 있다는 걸 저 시점에서야 알았다 보니 결국 행사 끝까지 활용하지 못한 채 끝났습니다. 약간 아쉽지만 뭐 이미 행사장 본체가 더 이상 바랄 게 없었을 정도로 좋았으니 불만은 전혀 없습니다.
행사 진행 과정
사전 준비 ~ 강연회 ~ 점심
예정 시각 30분 전 쯤 먼저 행사장에 가서 준비했습니다. 책상과 의자는 미리 배치가 되어 있었으니 멀티탭 깔고 청소 좀 한 게 전부였는데, 평소에 많이 안 쓰는 건물인지 먼지가 좀 많이 날려서 환기도 한 번 시켰습니다. 10시 쯤 참가자들이 도착하고는 서로 간단한 자기소개를 나눈 다음 30분 쯤 기다렸다가 강연회. 강연회가 예상치 못하게 늦어졌던 만큼 비는 시간이 생겼었는데, 그 시점에서는 특별히 할 수 있던 게 없던 만큼 각자 자유롭게 노트북 만지는 시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처음 강연회 얘기를 꺼낼 때는 “해설사 선생님 한 분 모셔와주실 수 있는가”로 물어봤고 거기에 특별히 별 말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막상 당일에 보니까 역사원 원장님이 직접 오시겠다고 해서 아 직접 와 주신다고? 하고 살짝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될까 했는데, 오히려 딱딱한 강의가 아니라 그냥 이야기를 듣는 느낌으로 흘러가서 참여자들이 더 친근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점심 식사는 단체로 먹으러 갔는데 특별한 문제가 안 터져서 다행이었습니다. 여기서는 일본 사례도 참고가 안 되는 만큼 (그 동네는 각자 먹고 오후에 재집합함) 먹을 것으로 꼬이기 시작하면 답이 없는데 무계획으로 갔던 것도 사실이고… 지금 생각해보면 사전에 리스트를 공유하고 뭐가 좋을지 투표를 받는 것도 괜찮을까 싶은데, 그러면 또 그 자리에서 정하는 맛이 없고… 역시 밥 정하는 게 제일 어렵습니다.
포토워크 ~ 편집 ~ 해산

오후 포토워크는 비가 오기도 하고 더워서 걸어다니는 것은 포기하고 차로 진행했습니다. 7명 정도 되는 인원이어서 차 두 대를 사용해서 각각 돌았고, 두 차가 붙어 다녀도 그렇게 의미가 없는 만큼 한 팀은 문화재를, 한 팀은 공공기관을 찍자고 하고 해산했습니다. 도는 것 자체는 문제 없이 끝났지만, 돌아야 할 (찍어야 할) 대상물의 공유가 매끄럽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도는 순서도 뒤죽박죽이었던 만큼 사전 준비가 부족했음을 느꼈습니다.
포토워크 대상물은 원래는 행사 페이지에 목록으로만 적어 놓았었는데, 참가자들이 해당 장소가 어디쯤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해 결국 혼자 보려고 만들었던 지도 리스트를 공유했습니다 (공유 목록 링크). 공유하자마자 다들 무엇이 어디쯤에 있는지 이해하면서 효율이 몇 배는 올라갔습니다. 진작 이럴 걸… 차라리 OSM을 써서 행사 페이지에 삽입해둘걸…
오후 편집 시작 직전에는 다시 역사원 사무실을 한 번 들러서 서적 자료나 고지도 이미지 등을 받아왔습니다. 다만 정말 제대로 된 책은 하나였고 나머지는 다 가이드북에 가까워서 활용하기가 조금 애매했고요. 어차피 다들 위키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보니 여기서 특별히 할 것은 없었고 저도 제 편집에 집중했습니다. 끝나고 보면 항상 괴물같이 편집을 하는 사람들과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들로 갈려서 아쉽긴 하고 좀 더 편집을 독려했어야 하나 생각도 들지만, 하라고 해서 할 것 같지도 않으니 좋았쓰.
행사 이후의 편집
행사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고 끝이 아닙니다. 일회성으로 끝낼 행사라면 그래도 되는데 이번에는 그러면 기껏 한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그래서 저도 간간이 문서 하나씩 만들고 자랑하는 척 하면서 같이 하자고 말을 남기고 있는데, 역시 현장에서보다 반응이 옅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강경’이라는 주제 하나로만 집중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흥미가 빠르게 흩어지고 있는데 나중에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면 더더욱 관심이 옅어지는 것이 아닌지도 걱정입니다.
긍정적인 면을 보면, 행사 종료 이후 이루어지는 기여는 현실적으로 0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나름 일반 참가자에 의한 문서 생성이 있었습니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일단 성과는 있었으나 객관적으로 보면 역시 턱없이 부족합니다. 행사 참석과 관련 없이 ‘위키마을 강경’ 자체에 관심을 보였던 편집자 10명 중 실질적으로 저를 포함해 3명이 90% 이상의 편집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편집이 없던 건 아닌데,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냈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과제입니다.
위키미디어 재단의 권유를 받아 이벤트 대시보드를 이용해 수치로도 정리해 보았으나, 강경 관련 문서만 한정해서 집계하는 것이 불가능해 데이터 오염이 심했고 일반 참가자에게는 오히려 헷갈리기만 했습니다. 다만 대표 문서들을 보면 기존 문서 보강(강경읍, 강경읍의 역사 등)과 신규 문서 생성(강경포, 강경장 등)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동시에 이루어졌음이 보이고, 강경읍을 다루는 틀이나 오픈스트리트맵의 강경읍 경계 추가처럼 애초에 수치로는 잡히지 않는 기여도 있었습니다.
또한 모티브가 되었던 위키피디아 타운과는 달리, 지역 주민이 직접 위키백과를 건드리는 작용은 전혀 없었습니다. 위키백과는 무엇이고 우리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가능하다면 동참해 주었으면 한다고 설명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① 기존의 편집자가 그 지역에 관심을 엄청나게 갖게 만들던가, ② 원래부터 관심이 있을 만한 지역 주민을 위키백과 편집자로 만들던가 해야 하는데, 둘 다 결코 쉽지 않음을 보자마자 느끼시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이번 사례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행사장이라는 특성 상 ‘강경에 관한 문서를 보충하자’는 것이 주제가 되었으나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강경이 아닌 ‘지방 컨텐츠 전체’라는 것입니다. 강경이라는 세부 주제에 집중하여 이번 행사는 성황리에 마쳤으나, 이 흐름을 적절히 조절하지 않으면 결국 지방을 아우르는 프로젝트가 아닌 지역 하나하나만을 바라보는 각개전투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다만 이는 지방의 자발적 참여가 아닌 중앙에서 조직하는 프로젝트의 태생적인 한계이기도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바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치며 – 여러분은요?
보통 마지막 부분에는 ‘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같은 말을 쓰는데, 저는 조금 다른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열어주시면 안될까요? 물론 제가 열어서 여러분이 참여해 주시는 것에도 무한히 감사를 드리지만, 저는 이 위키마을이라는 것이 규모는 작더라도 곳곳에서 계속해 열려, 궁극적으로 지방 스스로 지방 문서를 만들어가는 결과를 낳았으면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단순한 참가자에서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개최하는 것에 관심을 가져주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는 곳에는 저렇게 풍부한 적을 거리가 없어서 무리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반대로 제대로 마음먹고 자기가 사는 곳의 문서를 보충해보신 경험이 얼마나 있으신가요? 안 해봐서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숨겨진 보석을 발견해나가는 것이 위키마을의 묘미이자, 위키백과의 묘미이기도 합니다. 굳이 거창한 행사를 열지 않아도, 집에서 가까운 문화재 문서를 채우거나 하는 단순한 기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언젠가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가장 풍부한 분야가 한국의 문화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소망하며, 이번 글을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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